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싱턴 위저즈 (문단 편집) === 창단과 성장기 === 1961년에 포장업체인 일리노이 패킹 컴퍼니 사주 데이빗 트래거에 의해 시카고를 연고로 하여 '시카고 패커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초대 단장은 지역 스포츠 프로모터 해리 해닌(1902~1989), 감독은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의 레전드 짐 폴라드였다. 당시 선수진은 바비 레오나드, 잭 터너, 호레이스 워커, 하위 칼, 랄프 데이비스 등 방출 직전의 선수나 저니맨들로 꾸렸으며 드래프트에선 전체 1번으로 인디애나 대학교 출신 월트 벨라미를 뽑았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capitalcenter.jpg]] '위저즈의 아버지' 에이브 폴린 전 구단주 (1923~2009) 신인 벨라미를 중심으로 한 팀은 18승 62패로 시작한 뒤, 1시즌만에 산들바람이라는 뜻의 '제피어스(Zephyr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성적은 25승 55패에 그쳤다. 1950년에 해체된 시카고 스탁스의 전례에서 보듯, 당시 시카고는 MLB의 시카고 컵스와 NFL의 시카고 베어스가 인기를 독차지한 터라 흥행이 잘 안됐다. 1963년 볼티모어로 연고를 이전해서 팀 명칭도 총알이라는 뜻의 불리츠로 바꾼 뒤,[* 해당 팀명의 유래는 연고지였던 볼티모어 근처에 탄약 제조 공장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며 진짜 의미는 총알처럼 빠른 농구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수도임에도 도시의 이미지가 워낙에 안 좋았던 까닭에 한때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에 들어갈 정도로 막장 이미지였던 동네였다.] 드래프트에서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 출신 로드 쏜을 1라운드 2번, 아이다호 대학교 출신 거스 존슨을 2라운드 10번으로 각각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폴 호그 및 래리 스타버만을 진 슈(뉴욕) 및 케빈 로커리(디트로이트)와 각각 맞바꿔가며 31승 49패로 올랐고, 1964년에 건설업자 에이브-아이린 폴린 부부가 인수한 뒤 트레이드 시장에서 테리 디싱거, 쏜, 돈 코지스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베일리 하웰, 돈 올, 밥 페리, 월리 존스 4명과 맞바꿔가며 37승 43패로 플레이오프에 처음 진출하여 첫 관문에서 강호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를 3승 1패로 꺾었지만, 지구 결승에서 엘진 베일러-제리 웨스트 콤비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2승 4패로 졌다. 1965-66 시즌 초반에 벨라미는 뉴욕 닉스의 짐 반스, 조니 이건, 조니 그린 3명과 맞바꿔졌고, 특유의 조직력으로 38승 42패를 찍어 플옵에 나갔지만 호크스에게 3전 전패를 당했다. 1966-67 시즌에는 감독이 3번이나 바뀔 정도로 연패를 거듭해 20승 61패를 당하자, 팀은 드래프트에서 [[흑인대학]] 윈스턴-세일럼 주립대학교 출신 얼 먼로를 전체 2번으로 지명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여 1967-68 시즌 성적을 36승 46패로 올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